밀리언셀러클럽의 100권 돌파 기념회에 다녀왔습니다. [미스트] 흑백 버전 상영도 했어요. 하이퍼텍 나다에서 보았습니다.
영화 본편 시작 전에 다라본트 감독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소견을 밝힙니다. 흑백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제작사는 당연히 원하지 않고… 요즘 관객들은 흑백을 싫어하고… 특히 젊은이들은 흑백은 낡았을 뿐더러,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싫어하니… 투덜투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흑백이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어차피 영화란 렌즈와 조명 따위를 조절해 현실을 꾸며내는 것일 뿐. 이제는 흑백으로 만드는 게 아주 쉽다. DVD에 실을 수도 있다. 코엔 형제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컬러로 촬영하고 흑백으로 개봉했지, 이건 정말 굉장했다. 나는 [미스트]의 컬러도 좋고 흑백도 좋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그러니까 디렉터스 컷을 꼽자면, 흑백을 꼽겠다… 대충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흑백이 짱이에효♡”
과연 흑백으로 보는 [미스트]는 정말로,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김종일 작가가 이런저런 설명을 했는데, 다라본트 감독이 60년대 옛 몬스터 무비에 엄청난 애착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프닝부터 영화는 옛것에 대한 애착을 보입니다. 전축에서 들리는 듯한 낡은 음악 소리가 퍼집니다. 주인공인 아빠 엄마 아이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그냥 비가 많이 오니까 계단을 내려가고 갑작스레 나무가 집을 덮칩니다. 이 이음매가 무척 어색한데 덕분에 지금 보면 어설픈 게 많이 느껴지는 옛 흑백 영화들이 떠올라요. 게다가 주인공은 무려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직업을 갖고 있죠. 그는 뒤에 불평합니다. “요즘은 포스터도 포토샵으로 뽑아내는 세상이야.” 
그래서 이런 포스터도 만들었나?
주인공이 그리는 포스터는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이고 이 포스터 그림 위로 뜨는 제작사 이름은 ‘A Darkwoods Production’입니다. 다라본트가 운영하는 제작사죠. 아 참, 게다가 김종일 작가가 말해주기를, 마샤 게이 하든이 연기한 카모디 부인이 중얼거리는 “My life is for you.”는 [다크 타워]에서 악역들이 자주 쓰는 대사라고 해요. 
다시 봐도 여전히 환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이는 마샤 게이 하든.
최근에 샘 레이미가 [드래그 미 투 헬]에서 영화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때, 정말로 자동차 엔진에 시동을 거는 장면으로 그걸 알렸듯, 이 영화도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는 장면에서 경고음이 크게 울립니다. 그리고 한 노인의 다급한 외침. “Something in the Mist!” 이런 방법들이 참 재미있고 좋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매니저쯤 되어 보이는 양반 있죠, 초반에 주인공 팀에게 몇 번 태클을 걸던. 로프 잡는 시퀀스에서 재밌는 디테일을 보여주었습니다. 쥐고 있던 로프가 갑자기 빨라지자 주인공 데이비드나 올리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이걸 잡으려 합니다. 그러다가 로프가 갑자기 확 풀리는 바람에 모두 우당탕 넘어지죠. 다시 잡으려고 달려드는 주인공들과 달리, 이 아저씨는 이 순간에 화들짝 놀라서는 로프가 무슨 촉수라도 되는 양 몸서리치며 내팽겨쳐 버리더군요. 킥킥.
데이비드 역의 토마스 제인과 올리 역의 토비 존스. 둘 다 참 멋있는 캐릭터를 맡았어요.
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마지막 순간에 깔리는 음악이 과잉이라고 생각해서 영 별로라고 느꼈었는데, 다시 볼 때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딱이었어요. 오히려 그 ‘과잉’이라는 느낌이 딱, 그 순간에, 제 열쇠 구멍에 꽂힌 열쇠처럼 들어맞는 듯한 느낌. 환하게 전등이 켜진 차가 슈퍼마켓 유리를 지나갑니다. 느릿느릿. 어떻게 보면 마치 과시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린 이렇게 차에 탔어. 성공했다고.’ 그리고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으어어어어, 엄청난 순간입니다. 이 장면이 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오는 장면일 줄이야.
이어 안개를 헤치며 달리는 자동차. 오프닝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 데이비드의 ‘The Draytons’가 새겨진 우편함이 다시 한 번 보입니다. 똑같은 각도로. 그때와 지금, 상황은 단 이틀 만에 완전히 달라졌지만요.
그리고 마침내 결말. 제겐 납득하기 힘든 결말이었는데……. 다시 보면서, 이건 꼭 거대한 농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그래요. 거대한 농담 같은 결말. 이전에는 이 마지막 결정의 순간을 지금보다 더 늘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좀 더 납득하기 쉬웠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총알 발사와 안개가 걷히는 틈이 너무 짧았다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게 한결 여유롭게 다가왔습니다. 캐릭터들의 감정선도―물론 처음 봤을 때도 엄청났지만―훨씬 촘촘하고 치밀하게 느껴져서, 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겪어보지 않은 관객은 상상하기 힘들―피로와 좌절이 강렬하게 제 피부에서 타올랐습니다. 타고 남은 묵직한 잿더미는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가슴에 남았어요. 시리고 저릿저릿한 이 순간.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니,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제 글도 한 줄로 요약 가능합니다.
“프랭크 다라본트가 짱이에효♡”
- 결말에 대해 인생사 타이밍, 이라는 자조적인 농담과 함께 힘없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제가 그랬습니다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겠죠. 그래요, 쉬 무릎 꿇지 않는 꿋꿋한 의지란 참 훌륭한 거죠. 물론 명박스러운 의지는 몹시 곤란하지만.
- 여전히 잘생긴 샘 위트워(사진 아래). 
- 다라본트는 최후의 생존 팀을 가족으로 꾸립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아들. 음, 무슨 의미일까요?
- 2009/07/14 22:35
- jekyll10.egloos.com/1557580
- 덧글수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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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P를 이용해서 영화를 흑백으로 보기 2009/09/13 07:23 #
최근 감명 깊게 본 영화 "미스트". 미국에서 3월에 DVD가 발매된다고 한다. 재미있는 영화블로그! 익스트림무비 :: '미스트' 3월 美서 DVD 발매 속 깊은 장르영화 - 오마이뉴스 한국의 DVD시장의 현실과 국내 흥행이 별로라 발매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구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1disk버전과 2disk버전 두가지로 발매가 된다는데 2disk버전에는 흑백으로 된 버전이 포함된다고 한다. 예전 B급 공포영화에 대한 오마주적인..... more




덧글
헤헤헤헷.
재미있는리뷰 잘 보았습니다. 사실 행사장에서 영화 중반에 빠져나가는 분들이 많아 역시 대중에게 별로인 영화인가..싶었거든요. 영화가 재밌으셨다니, 왠지 모르게 저도 기쁘네요~
전 오른쪽에 좀 앞쪽 즈음에 앉아 봐서 나가는 관객이 많았는지 전혀 몰랐어요.
사실, 스크린에 집중하느라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만요 :-)
대중에게 별로인 영화인가..싶었거든요.
대중에게 별로인 영화인가..싶었거든요.
대중에게 별로인 영화인가..싶었거든요.
대중에게 별로인 영화인가..싶었거든요.
대중에게 별로인 영화인가..싶었거든요.
.......
조용하면서 뭔가 죄어오는 스릴러는 흑백이 어울리더군요.
"조디악"을 Kmplayer를 이용해 흑백으로 봤는데 느낌이 더 무서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옛날이 배경이다 보니 (거의 CG긴 하지만) 흑백 버전도 무척 잘 어울릴 듯싶군요 :-)